싱가포르에서의 한달 소회
한 달이 지났다
싱가포르에 도착하고 어느덧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지난 한 달은 나와 우리 가족에게 크고 작은 변화를 맞이한 시기였다.
가족, 각자의 자리에서
나는 운동을 하고, 영어 학원을 다니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아내는 회사 사람들과 더욱 가깝게 지내는 듯하다. 비록 주로 온라인이긴 했지만 기존에 소속되어 있던 팀이고 오랫동안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별다른 거부감이나 어려움 없이 우리 중 가장 적응을 잘하고 있다.
아들은 등원·하원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씩씩하게 다니고 있다. 바로 이전에 한국에서 다녔던 유치원과는 다르게, 여기는 아직까지 숙제가 전혀 없다. 그리고 등하원 시간에는 무조건 넓은 필드에서 놀면서 시작하고, 놀면서 마무리한다. 데리러 가면 늘 필드에서 놀고 있고, 항상 친구들과 더 놀다 가겠다고 한다.
아들의 기질을 고려해 활동이 많은 유치원을 선택했는데, 등하원할 때마다 필드를 뛰어다니며 노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좋다.
개인 프로젝트, 그리고 사람
처음 싱가포르에 오기 전의 계획은, 그동안 하고 싶었던 프로젝트들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일하면서 정시에 퇴근해 아이를 돌보다 보니, 개인 프로젝트에 쓸 시간을 좀처럼 내지 못했다.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에, 이왕 쉬게 된 김에 남는 시간을 개인 프로젝트에 실컷 쏟아보자는 게 계획이었다. 하지만 막상 지내다 보니 다음의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사람들과의 관계와 그 사이에서 나누는 대화가 심리적으로 많이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3주 동안 집에서 혼자 개인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문득문득 고독함이 밀려왔다. 커밋과 푸시를 하나 마칠 때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긴장을 풀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만약 계속 개인 프로젝트를 하며 살아갈 수 있는 상황이 되더라도, 이런 삶을 매일 지속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생활 패턴에 맞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하고 싶었던 두 개의 프로젝트는 마무리했고, 3개월 동안은 개인 프로젝트와 독서, 운동에만 시간을 쓰려 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취업 준비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가오는 출장, 다가오는 압박
4월 마지막 주에 아내가 출장을 간다. 다행히 그리 멀지 않은 주변국이고 미국에 비하면 긴 기간도 아니지만, 여전히 아내의 출장은 나에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엄마 없이, 활동량이 어마어마한 아이와 온전히 둘이서 시간을 보낸다는 건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아내의 출장일이 다가올수록 나는 그 압박을 느끼고, 그 부분이 나를 예민하게 만드는 것 같다. 작년부터 여러 번 겪은 일이지만, 아직 마인드 컨트롤이 많이 부족한 듯싶다. 아들과 둘이 보내는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는데, 아직 성숙하지 못한 나는 계속 연습하고 노력하는 중이다.
정신없이 흘러간 두 달
2월부터 지금까지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간 것 같다. 급하게 당겨진 해외 이주 일정에 맞춰 2월 안에 모든 것을 마무리해야 했다. 첫째 주에는 집을 보러 싱가포르에 다녀와 계약을 했고, 둘째 주에는 이삿짐을 보냈고, 셋째 주에는 설날을 맞아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고, 넷째 주에 비행기를 타고 넘어왔다.
3월에도 여러 행정 처리와 짐 정리, 아내의 회사 적응, 아들의 유치원 적응 등 많은 일들이 있었고, 이제야 많은 부분이 자리를 잡으며 루틴이 시작되는 기분이다.
행복은 빈도다
하루하루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횟수가 한국에 있을 때보다 줄어든 것 같다. 한국에 있을 때는 거의 모든 것이 나의 예상 범위 안에 있었고, 회사와 동료, 친구, 가족, 집 모두가 나의 컴포트 존이었다. 그 안에서 여유도 있으니 조금 더 행복을 자주 느꼈던 것일까?
작년에 읽은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에 기억에 남는 문구가 있다. 행복은 빈도라는 것이다. 행복은 금방 휘발된다. 아무리 깊은 행복을 느껴도 휘발된다. 잦은 빈도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이 행복한 사람을 만든다.
그렇다면 그 빈도를 어떻게 늘릴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에 좀 더 집중하고, 사람들과 부딪히며 이야기하고 함께 무언가를 풀어가는 일.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일상에서 행복을 놓치지 않게 해주는 가장 작은 안전장치가 아닐까.